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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만남]바람이 불어오는 곳, 첫사랑들 만나 보실래요? - 『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 이종국


- 이종국
게재일 : 2009-09-08 조회수 : 1,077
글·사진 / 김이준수 jslyd012@gmail.com
#1. 요즘 길을 가다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광고가 있어요. 일부 버스 옆구리 붙은 이 광고.

“8月 7日 거대시장이 열립니다. 12억 한·인도 FTA서명”

우리나라와 인도가 최근에 맺은 ‘포괄적 경제동반자 협정(CEPA)’을 광고하는 것인데, 실질적으로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음을 뜻하죠. 상품과 서비스 교역, 투자 등 경제 전반에 걸친 협정의 손익이야 경제학자나 경제전문가의 몫이고, 제가 이 문구에서 빈정 상한 것은 그 시선 때문이에요. 모든 것을 경제적 이익으로 치환하고자 하는 시대의 욕망을 드러내는 시선. 인도에 대한 이해, 경제 협상의 철학적 가치보다, 오로지 상품을 파는 시장으로서만 존재하는 인도라니. 인도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참 불편한 시선이에요.

문득 『느린 희망: 지속 가능한 사회를 향해 인간의 걸음으로 천천히』(유재현 지음/그린비 펴냄)에 나온 쿠바 아바나의 시 경계 표지판이 떠올랐어요.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어요. ‘모든 쿠바인들의 수도에 오셨습니다. Usted ha Llegado a La Capital de todos Los cubanos.’ ‘어서 오세요, 서울입니다.’라는 말인 셈인데, ‘쿠바’의 수도가 아닌, ‘쿠바인’들의 수도에 왔다는 이 문구, 잊히지 않아요. 국가나 아닌 사람을 앞세운, 시장이 아닌, 사람에 대한 이해를 담을 수는 없었을까요. 아, 내가 너무 모자란 것일까요, 아님 시대와 불화하는 것일까요. 누구, 아는 사람, 손!

#2. 좋아하는 형이 있어요. 한 유명 만화의 스토리 작가를 하는 형은 내게 몇 번이고 네팔인들의 나라를 권했어요. 그곳을 다녀온 형은 네팔인들의 나라가 나와도 잘 맞을 것 같다며, 네팔 사람들을 꼭 만나고 오라고 신신당부(!)를 했죠. 언젠가 형과 함께 꼭 만나고 오자는 말과 함께. 옆 나라의 인도를 가서 인도인들에게 흠뻑 젖은 적이 있는 저는, 언젠가 네팔인들과 마주할 꿈도 꾸고 있어요.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거 있죠! 아세요, 이런 기분? ^.^

여행이 아닌 사람을 담은 흔적, 『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

그래요, 네팔! 그런 제게 이 책이 왔어요. 『잘 있나요? 내 첫사랑들』(이종국 지음/두리미디어 펴냄). 저자이자 다큐 연출자 이종국 PD가 아주 특별한 신혼여행을 떠난 부부를 촬영하기 위해 간 네팔에서 맺은 어떤 인연의 고리를 묶은 책이랍니다. 일 때문에 찾아간 곳에서 사람과 사랑을 만난 기록. 여행이 아닌, 사람을 담은 흔적. 네팔이 아닌, 네팔인들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

무엇보다 저는 제목에 쓰인 복수형, 접미사 ‘들’이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 첫사랑들. 그가 만났던, 하나가 아닌 그 모든 첫사랑‘들’. 과대포장 되기 마련인 첫사랑의 로망과 신화에 함몰되지 않는 듯한, 어떤 일상적인 아우라. 한 블로거도 리뷰에 이렇게 적고 있어요. “책 속의 글자들은 다 조금씩 촉촉해 보인다. 사랑하는 이들을 향한 절절한 그리움이 묻어나, 톡 건드리면 눈물을 떨굴 것 같은 글자들.”

사실 이 책, 나쁜 책이에요. 책을 주로 읽었던 버스 안에서 절 얼마나 시큼하게 울려버리는지. 거참, 흘러내리는 눈물 앞에 전 완전 무방비였답니다. 그래요, 버스 안에서 책 한 권 들고 눈물 흘리는 남자가, 바로 저에요. ㅠ.ㅠ 물론 슬퍼서도 아니고, 어떤 촉촉한 그리움 때문에. 또 하나, 고백하자면, 이 PD의 친구들이 저도 알고 지내던 이들 같았어요. “당신의 딸을 사랑하고 있습니다.”(p.133)라며, 그의 사랑이었던 디빠의 아버지 어디꺼리 씨에게 한 고백 앞에선, 꼭 그것이 제가 하는 말인 양, 가슴 떨려했어요. 디빠를 향한 마음이나, 디빠에게 청혼하고 있는 듯한. 그리고 결국 제가 실연당한 듯한.


그런데 마침, 책 출간 기념으로 팔월 한 달 여 동안 홍대 부근의 카페 ‘디디빠’에서 사진전 <내 인생의 보물섬, 네팔!>이 열렸고, 마지막 날인 31일, <한여름 밤과 30인의 독자!>라는 특별한 축제가 마련됐어요. 그렇게라도 네팔 사람들과 만나고 싶던 전 냉큼 이 현장을 찾았답니다. 음,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가 써내려가는 것은 가슴 벅차고 알싸했던 한여름 밤의 추억이 담긴 기록이에요. 이 기록을 당신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 누군가를 그리워하고 있는 모든 분께 이 책을 바칩니다.”라는 책의 첫 인사말마냥, 이 기록도 어설프게나마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저와 당신에게 건넵니다. 나마스떼.

한여름 밤과 30인의 독자가 함께하는 작은 축제

저자가 찍은 다큐로 이날의 축제는 시작됐어요. 2006년 8월 26일 KBS 수요기획 <빌 바둘과 버선띠의 아주 특별한 신혼여행>. 저자와 네팔의 소중한 인연들과의 첫 만남이자 책을 탄생시킨 근원. 다큐 상영이 끝나고 이 PD가 건네는 축제의 인사말. “어떻게 하면 재미있고 서먹하지 않고, 무언가를 받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축제가 서서히 리듬을 타고, 감미로운 목소리, 메이라임의 공연이 이어져요. 김연우의 노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를 비롯한 3곡의 곡이 흘러나왔어요. 첫 곡이었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는 저자가 디빠로부터 실연을 당하고 여행길에서 들었던 바로 곡이랍니다. “이어폰을 꽂은 채 바람을 맞으며 나는 김연우의 「바람, 어디에서 부는지」라는 노래를 듣고 또 들었다. 힘겹게 사랑한 기억을 싣고 달리는 버스 안. 혼자라는 게, 살아가는 게, 낙인처럼 아픈 상처를 주고받으며, 나를 죄인으로 만들어왔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사정없이 펄럭이는 바람이 눈을 찔러, 찔끔 눈물이 삐져나왔다.”(pp.149~150) 책을 읽을 때, 이 구절에서 저는 김연우의 노래를 찾아 들었어요. 음 그땐, 저도 꼭 실연을 당한 것만 같았던 기분이었어요. 그렇게 동년배인 저자에 감정이입을 했던 기분이 불쑥 떠올랐어요.

책의 추천사를 써주고, 저자가 ‘선배님’이라고 부르고 싶으나 아직은 어려운, 존경하는 분 중의 한 분이라는 주철환 전 OBS경인방송 사장도 오셨네요. 지금은 프리랜서이신 셈이죠. 책과 이 PD에 대한 덕담과 자신의 근황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요. “이종국 씨, 참 대단하죠? 같이 회사 다닐 땐 몰랐어요. 이 PD는 만날 머리가 아프대요. 그래서 ‘머리 아픈 놈’이라고 불렀어요.(웃음) 지금은 머리 괜찮아요? (“여전히 아픕니다.”) 원래 저는 책을 읽지 않아요. 지금 살아갈 날이 더 적은데, 시간도 귀한데, 이종국 씨의 책을 읽는 건, 억울하다고 생각했어요. 간절히 부탁해서 읽었는데…… 읽었더니 참 흥미로웠어요. 사진도 보니, 네팔 사람들을 꼭 만나고도 싶고. 저도 책을 몇 권 어쭙잖게 썼는데, 저보다 나아요.”

음악을 듣고 창작도 즐겨하신다는 주 전 사장께서는 최근 음반을 발표하신대요. 그리고 구월의 마지막 토요일 저녁에 이화여대에서 음반 취입 공연도 하신대요. 시간 있으면 놀러 오라는 말씀과 함께, “여러분, 젊음을 마음껏 누리세요. 시간은 황당하게 빠르게 흘러가요. 사실 음반 취입은 ‘장기하와 얼굴들’을 보고 동기 유발이 된 측면이 있어요. 인디레이블을 통해서 했는데, 돈도 얼마 안 들었다더라고요. (웃음) 지난 2월 회사를 그만두고 준비를 했어요. 여러분도 하고 싶은 일 많이 하세요. 그리고 살면서 작품을 남기세요. 글, 노래, 도자기, 집도 좋지만, 사람을 만드는 게 가장 좋을 수도 있어요. 순간순간이 매우 중요해요. 바로 이 순간, 이 자리가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자리가 되길 바라요.”

그 말을 들으면서, 딱 매칭이 되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책의 이 구절이 떠올랐어요. “수천 마리의 반딧불들 속에 홀로 서 있어 본 적이 있는가. 세상의 처음 또는 끝일 것만 같은 어둠 속에서 수천 개의 별 부스러기가 떠다니는 걸 본 적 있는가. 그 환하고 어지러운 군무의 한가운데서 세상이 지독히 아름답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세상이라는 거대한 존재에 대한 가슴 뛰는 사랑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p.161) 순간을 살라는 말, 카르페 디엠(Carpe Diem). 오래전, <죽은 시인의 사회>가 알려줬던 그 말.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를 버리고, 미래(노후)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불안이 주입하는 주술에 사로잡혀, 지금과 사랑에 괜히 소홀해진 것 아닐까, 하는 생각. 아, 역시나 나는 이 시대랑 ‘절친’이 되긴 글렀나 봐요. ㅠ.ㅠ

아, 책을 펴낸 출판사 대표께서도 한 덕담을 하시네요. 당초 2007년 4월에 나왔어야 할 책이 2년을 훌쩍 넘어서야 나왔는데, 그 오랜 시간 기다려줘서 고맙다며 저자가 고마움을 전하자, “제목 때문에 (이 PD와) 두 달여 피 튀기는 싸움을 했습니다. ‘왜’ 복수여야 하냐, 목적을 분명히 하지 않아서 너무 미웠습니다. 책 나오고도 절 끊임없이 괴롭혔어요. 엽서와 포스터까지. 원고를 줬음 됐지, 왜 이렇게 괴롭히냐고 그랬습니다. (웃음) 그래도 이 PD가 고마워요. 이 PD가 ‘형, 사랑은 이런 거야.’라고 얘길 건넨 듯합니다. 이 PD가 길에서 만난 귀한 스승들과 함께 희망을 나누고 싶고, 살을 부대끼면서 이뤄낸 기록이잖아요.”

또 하나의 멋진 공연도 함께합니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나고” “목소리가 가슴을 도려내는” 아스팔트 킨트의 미니 콘서트. 지난 7월 28일 싱글을 발매했다는 이 밴드는 「Time after time」을 시작으로, 이 PD가 꼭 불러달라고 요청했다는, 영화 <클로저>에 삽입됐던 「The Blower's daughter」, 「낮술 한 잔」, 「트러블」을 연주했어요. 근데 아, 뭐랄까요. 속된 말로, 뿅 갔습니다. 처음 접한 밴드 이름이자 노래였는데, 무대와 객석을 사로잡는 카리스마와 중성적인 목소리가 뿜어내는 멋진 노래들. 저자가 개인적인 취향으로 공연을 부탁했다는데, 정말 저도 덩달아 훅~ 갔어요. 거기 있었던 많은 분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 들어요. 좋은 밴드를 알게 된, 예기치 않은 선물까지 받아든 기분이랄까요.

사랑들아, 길을 묻는다……

팔월의 마지막 날, 한여름 밤의 멋진 축제가 그렇게 익어가요. 저자와 이야길 나눌 시간도 됐어요. “새벽에 지인들에게 문자를 많이 받았어요. 이 책은 새벽에 많이 읽나 봐요. (웃음) 그러면서 ‘가증스럽다’, ‘너 맞냐’, ‘어느 게 진짜 니 모습이냐’ 이러는데, ‘책 속의 나도 나’고, ‘니가 평소에 만나는 것도 나’라고 말해요. 책 쓰는 게 얼마나 힘들다는 걸 알아서, 다시는 쓰기 어려울 것 같아요. 아시다시피 본업은 PD라, 다음은 아르헨티나에 가서 스쿠터를 사서 체 게바라가 갔던 길을 가고 싶어요. 칠레의 마추피추도 가고, 볼리비아에 가서 스쿠터를 팔아 뱃삯으로 쿠바에 가선, 쿠바 음악에 취해 그것을 다큐로 찍고 싶은데…… 글쎄요, 모르겠어요.”

디빠가 그립냐는, 책을 읽은 독자라면 가장 궁금해 할 질문에, 저자는 말해요. “10월 말에 네팔로 갈 생각이에요. 친구들에게 책 선물을 할 거에요. 읽지는 못하겠지만 기뻐할 분들이 많아서. 다 그리운 데, 디빠도…… 그립죠. 근데 이성으로서의 사랑과 지금 그리움은 색깔이 달라졌어요. 작년에 디빠 아버지인, 어디꺼리 씨가 돌아가셨어요. 네팔의 여느 아버지와 달리 합리적이고 깨어 있고, 자상한 분이셨죠. 저를 사위 삼고 싶어 하셨지만, 딸의 뜻을 거스르지는 못하셔서…… 디빠는 방글라데시에서 유학을 마치고, 지금 스물여덟이에요. 네팔에서는 이미 혼기를 노친 노처녀죠. 집안에 남자가 없어서 디빠가 가장 역할을 해야 해요. 아버지를 이어 봉사기관의 단체장을 이어받아 의료봉사를 할 것 같아요. 음, 그런데 (디빠는) 결혼을 안 할 것 같아요. 제가 아니더라도 결혼했으면 좋겠는데, 걱정이 돼요. 워낙 고집이 세고 책임감이 강해서…… 이번에 가면, 설득을 해 보려고요. 나랑 안 해도 좋으니까. 디빠에 대한 감정은, 뭐랄까, 이성이 아니라 애틋하고 그립고 안타까운…… 그래요…….”

음, 저자의 얘길 듣자니, 제 마음도 왠지 찡해요. 그냥, 이뤄지지 못한 어떤 사랑 이야길 들을 때, 드는 그런 감정 있잖아요. 내 얘기 같기도 한 그 안타까움이 뒤범벅된.


이별에 대처하는 자세를 묻는 질문에, 저자는 그러네요. “저는 용감하지 못해서, 10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고 얘기하지만, 전 두 번을 찍은 적이 없어요. 나무를 찍을 때 도끼도 있고, 톱도 있지만, 저는 주로 톱으로 썰어요. 대신 시간이 많이 걸려요. 3~6개월. 그러다 안 넘어가면, 다른 나무로 가요. (웃음) 도끼를 들 용기도 안 생기고. 노홍철 씨처럼 하는 용기를 보면 부러워요. 디빠에게 너무 쉽게 돌아선 것 아니냐는 비난(?)도 있는데, 마음의 순결을 잃은 것에 대해 완고한데, 톱질이건 도끼질이건 못 하겠더라고요. 다른 경우에는 (헤어진 상대에 대해) 몇 개월이고 원망했지만, 디빠에겐 원망도 않았어요.”

사실, 저도 그게 궁금했거든요. 디빠와의 이별을 서술한 대목에서, 그는 담담하게 서술해 놨는데, 진짜 이렇게 담담했을까, 싶었죠. 이해는 될 듯하면서도, 너무나도 아쉬웠던. “(…) 이 모든 것들을 기억의 강 위로 흘려보내야 한다. 마치 ‘한 여름밤의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다만, 약간의 상처는 남는다.”(p.147)

그러니까, 그게 궁금했던 건, 그녀 때문에, 몇 차례나 더 네팔을 찾아간 그의 마음이 안타까워서. 가까이 닿았다 싶었는데, 멀어지고야 말았던 그 마음이 꼭 내 마음 같아서요. 하나의 심장이지만, 다시 다른 사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한국 남자와, 하나의 심장으로는 평생 단 한 사람만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네팔 여자의 그 넘을 수 없는 간극. 물론, 그것은 옳다, 그르다의 문제가 아니죠. 그냥, 서로 다른 문화와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이니까. 육체뿐 아니라 마음의 순결까지도 감안해야 하는, 심장은 오로지 한 사람만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것도, 제 머리에선 고개를 저었지만, 이 PD의 말에도 끄덕끄덕. “죽을 만큼 사랑했어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단념할 수 있다. 아무리 사랑해도 나는 그녀가 될 수 없고, 그녀가 바라는 사람도 될 수 없으니까.”(p.147) 아, 정말 사랑은 알 수 없는 것이에요. 흑, 사랑아, 너에게 길을 묻는다…….

역시나 그도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었어요. “(실연당하고) 1~2주는 되게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서 (실연) 여행을 간 거예요. 세상에 없어지고 싶을 만큼의 마음이었죠. 설명하기 힘들었어요. 너무 아프더라는 식은 상투적이라 ‘다만, 약간의 상처는 남는다’라고 썼어요. 이것도 처음에는 ‘상처가’로 썼다가, ‘상처는’으로 바꿨어요. ‘가’는 보편적인 느낌인데, ‘는’은 개인적인 특별한 느낌이 있잖아요.” 그랬구나, 그랬구나……. 아, 나는 그렇게 사랑이, 아파요…….

하지만 그 아픔 때문에 건져 올릴 수 있었던 또 다른 사랑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라고 젊은 날의 이상은은 노래했지만, 대개의 경우 사랑할 때 보이지 않는 것은 그 사랑이 아니라 다른 사랑, 다른 사람들이다. 사랑의 주술에 걸린 자는 우물 안의 황홀경을 헤엄치기 마련이다. 못다 이룬 사랑이 지나가면, 사람들은 자신이 아주 좁고 배타적인 터널을 지나왔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 하릴없이 한산해진 마음과 눈에, 전에는 별스럽지 않았던 풍경과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오기 시작한다.”(pp.163~164)

그렇게 실연이 또 다른 사랑을 향한 창이 돼준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예도 있죠. 미치광이 그 남자, 지번(우리말로는 삶이라는 뜻)의 이야기. 멋있고 똑똑했으며, 주변 사람을 늘 즐겁게 하는 밝고 쾌활한 남자였던, 네팔 최고의 건축가를 꿈꾸고 있었으나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 반대로, 그만 정신을 놓아버린 그 남자. 많은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했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았던 산띠가 했던 말. “미친 게 아니라 아픈 거예요. 상처가 아직 낫지 않은 거예요. 마음은 한 번 다치면 쉽게 낫지 않잖아요…….”(p.322)

다른 첫사랑들에 대한 후일담

참, 저자가 라마(네팔의 여행가이드이자 저자의 절친 중 한명)에게 전화도 했어요. 라마는 지금 요코랑 결혼을 해서 일본에 있는데, 식당 종업원으로 일하고 있대요. 일하고 있는지, 안타깝게 전화를 받지 않아 통화는 이뤄지질 못했어요. “일본어를 아직은 잘 못해서 설거지 같은 걸 하면서 있어요. 두 사람이 여전히 사랑하는데, 결국 요코의 집안 반대로 요코가 집안과 결별했어요. 집에서 쫓겨났고, 두 사람이 그냥 혼인신고를 하고 살아가고 했어요. 나중에 네팔을 갈 때, 두 사람이 사는 오사카를 경유해서 갈 예정이에요.”

10년 후 모습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도 나오네요. “아마 카페를 하고 있을 것 같아요. 결혼은 못할 것 같고. 어쩌면 헬싱키에서 카페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 핀란드의. 셔러드(주-음악을 하는, 이 PD의 네팔 절친 중 한 명, 핀란드 PD의 도움으로 핀란드로 유학을 갔어요)가 핀란드에 있어요. 여기도 결혼을 했는데, 음, 그 여자가 유학에 도움을 준 핀란드 PD예요. 남녀가 한 집에 있다보니……. 흐흐. 지난 8월에 결혼을 했는데, 결혼식에 못 가서 아마 네팔을 들렀다 핀란드에 갈 예정이에요. 두 사람의 애가 나오는데, 저보고 God Father가 돼 달라고 하더라고요.”


저자가 네팔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는 어디였을까요. “수꿈바시 마을의 주막이 좋았어요. 매일 저녁마다 술 마시고. 근데 한국 여행자들을 데리고 갔었는데, 별로 좋아하질 않더라고요. (웃음) 또 산띠-디페쉬-서스띠가 사는 집의 홍차가 참 좋았어요. 서스띠가 홍차 마시는 날 쳐다보고요. 그 집이 참 좋았어요.” 아, 맞아요. 생각이 났어요. 그 집에서 저자가 감기에 걸려 발발 떨면서 춥고, 쓸쓸하고, 무섭고, 우물가로 물 길러간 서스띠가 걱정이 돼서 있을 때, 종이 문을 열치자, 등장한 서스띠. 그런 서스띠를 와락 안고는 반갑고 고맙고 미안해서 조용히 울었던 그 장면. 서스띠가 밥을 태우고 말았지만, 저자는 그랬죠. “내 생애 가장 따뜻한 저녁식사였다.”(p.319)

그렇게 밤은 익고, 술도 익고, 마음도 익어가는 축제. 저자의 카투사 시절, 막사를 같이 썼고, 뮌헨에서 바이올린 공부를 했다는 바이올린 연주자의 선율이 축제의 마지막을 장식했어요. 그리고 아쉽지만, 저자가 마무리합니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어요. 책을 읽는 분들도 개인사를 떠올리면서 여러분들의 책으로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읽고 나면 여러분의 책으로.” 참, 무엇보다 저자가 강조했던 이것. “책은 사는 게 중요하지, 읽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웃음)” 후후, 책 사서 첫사랑들 만나봐야, 비로소 온전한 당신의 책이 될 거라는 사실!

우리, 아직 만나지 못한 첫사랑들에게 인사해요

좋은 시간, 그렇게 아쉬움을 남기고 마무리됐어요. 그 첫사랑들, 저도 언젠가 꼭 만나서 함께 마음을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까도 그랬지만, 책에 나온 네팔 사람들이 꼭 저의 친구 같았답니다.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들에게, 나도 덩달아 이 말을 하고 싶어졌어요. “이봐요……. 정말 당신(들)이 그립답니다.”

참, 저자가 축제의 와중에 언급했던 곳들도. 자유, 조국, 혁명과 사회주의가 먼저 떠오르지만 분명히 하나 빠지지 않는, ‘인간’이 있는 쿠바. 인간적 자유, 인간적 조국(국가), 인간적 혁명, 인간적 사회주의를 꿈꿔온. 무엇보다 체 게바라의 체취. 저자가 카페를 하고 싶다고 말한 핀란드에서 <카모메 식당>과 같은 온기를 함께 구현했으면.

아, 바람이 불어요. 훌쩍 궤도 이탈을 하고 싶어요. 작은 샛길들을 찾아. 아직 만나지 못한 내 첫사랑들을 찾아. 바람이 불면 떠나야 할 곳. 네팔, 쿠바, 핀란드, 그리고 몇 년 전부터 꿈꿔오던 투바. 우리 각자, 그렇게 바람이 불면 떠날 곳이 있겠죠? 우리 미리, 그들에게 인사 할래요? “부디,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 첫사랑들.”

p.s.
저자가 네팔에서 벗들과 함께 시작한 ‘CWDC 어린이클럽 장학금’ 지원이 있어요. 조그만 정성들을 모아 아이들이 매일 아침 신나는 발걸음으로 학교에 갈 수 있도록 하는데요. 마음을 전하고 싶은 분들의 연락을 기다린대요. lovenepal@dur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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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국 저 | 두리미디어 | 200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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